본문 바로가기 주 메뉴 바로가기 사이트이용안내 바로가기


인터뷰‧기고

함께하는 행복한 세상으로 만들어 가겠습니다.

인쇄 QR코드 보기
인터뷰‧기고 게시판으로 제목,작성자,등록일,글내용 안내표입니다.
제목 [전남CBS, 라디오 칼럼] 외롭지 않을 권리_안경주 컬럼
작성자 전남여성가족재단 크리머스 등록일 2021-04-23


2021- 4- 14(수) 전남CBS, <시사의 창, 임종훈입니다> '오늘의 세상읽기'

전남여성가족재단 안경주 원장 칼럼

FM 102.1MHz(순천 89.5MHz), 모바일-CBS레인보우 애플리케이션 이용(전남CBS 설정)

[외롭지 않을 권리]


❏ 2013년 어느 날 60대 여성이 극단적 선택을 했습니다. 고등학교 동창생 사이인 A와 B씨는 고교 졸업 후 40여년 간 동거생활을 해왔습니다. 주로 B씨가 돈을 벌고 A씨가 살림을 했습니다. 아파트를 비롯한 모든 재산의 명의는 B씨로 되어 있었구요. 60세 초반, 100세 시대라는 말이 아무렇지도 않은 요즘 시대에 상속이니 재산분할은 아직 먼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둘의 동거생활은 B씨가 말기 암 판정을 받게 되고 B씨의 조카가 갑자기 나타나면서 끝이 납니다. 조카는 A씨가 간병하는 것도 막았습니다. 거의 쫓겨나듯 A씨는 정든 집을 떠나 거리를 전전해야 했고, 결국 함께 살아온 친구의 마지막도 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친구와 함께 살던 아파트 계단의 창에서 자신도 마지막 순간을 맞이했습니다. [외롭지 않을 권리]를 쓴 저자 황두영의 책에 소개된, ‘40년을 함께 살아온 두 사람의 비극적인 죽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법률적 가족관계로 묶이지 않는 관계에서는 장례를 치를 권리도 함께 했던 세간살이를 공유할 수도 없었던 것이지요.

❏ 특별한 사람과 함께 살 권리, 누군가를 보살피고, 보살핌을 받으며 사는 것이 인간의 보편적인 욕구입니다. 인간이 고독하지 않고 누군가와 함께할 권리는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행복추구권입니다. 행복추구권은 개인의 자기운명결정권을 전제하고 있으며 이 결정권에는 성적 자기 결정, 혼인의 자유와 혼인에 있어서 상대방을 결정할 수 있는 자유를 포함합니다. 위 책의 저자는 원하는 사람과 같이 삶을 꾸릴 자유가 꼭 혼인이어야 할까? 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결혼을 선택하지 않는 것이 다른 사람의 권리나 우리 사회의 공익을 훼손하는 것이 아니라면 혼인만이 특별한 한 사람과 함께 할 권리를 보장하는 길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혼인할 권리, 혼인할 사람을 결정할 권리를, 내가 함께 살고 싶은 사람을 결정할 권리로 확대하는 사회적 법과 제도가 필요하다는 주장이지요.


❏ 여가부는 최근 우리 사회의 가족 변화에 맞는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의 필요를 여러모로 점검하고 있는데요, 건강가정기본법에서 건강가정이라는 것이 ‘건강하지 않는 가정’이라는 개념을 도출시키므로 중립적인 법률명으로 수정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도 있었습니다. 더불어 혼인과 혈연 중심의 관점에서 형성되고 유지되어 온 우리 법과 제도는 1인 가구, 노인가구, 동거가족 등의 비중이 커지면서 다양한 가족을 ‘비정상 가족’으로 구분하는 것에 대한 지속적인 문제 제기도 있었습니다.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1인가구가 급격히 증가하여 2010년 23.9%이던 것이 2019년 30%를 넘어섰습니다. 2030대 싱글, 45세 이상의 이혼 및 결혼 포기로 인한 불안한 독신, 60대 이상의 빈곤한 독거노인 등이 포함된 것입니다. 고독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제도적인 가족에 포함되지 않고서는 이 고독을 이겨낼 방법은 없는 것일까요?

❏ 어떤 가족에 소속되어 있는지에 따라 많은 것들이 결정됩니다. 그런 가족을 유지하기 위해 각자 희생하는 사회에서는 평등한 개인으로서 가족을 만들기 어렵습니다. 한국사회는 가족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습니다. 우리 사회의 가족 사랑은 희생과 동의어가 되어 있어요. 가족에 대한 너무 많은 기대, 가족을 이루는데 너무 높은 장벽이 ‘함께 사는 즐거움’을 포기하게 합니다. 그래서 한국은 강요된 외로움의 시대를 걷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누군가와 숨을 나누고, 서로 도우며 살아가는 인간의 보편적인 욕망을 우리 사회의 가족제도와 법이 더 이상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 프랑스는 동거 관계를 인정하는 팍스법을 만든 후 출산율 반등에 성공하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드물게 2.0명 이상의 출산율을 보입니다. 동거 가구에 가정수당을 주고, 동거 관계에서 태어난 아이들에 대한 차별을 철저히 금지한 것입니다. 또한 동거 관계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부모 중 한쪽과 살든, 동거 가구에서 살든, 혼인으로 이어지든 상관없이 충분한 지원을 받으며 살도록 육아수당도 크게 높였습니다. 프랑스의 혼외 출산율은 2017년 기준 60%입니다. 한국의 혼외 출산율은 대략 1%대입니다. 다양한 가족에 대한 인정과 충분한 육아수당이 프랑스 출산율 상승의 주요한 요인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프랑스와 스웨덴 등은 가정의 모델이 굉장히 다양하여, 내가 결혼할지 말지, 동거로 살지 말지 등 선택이 폭이 넓어서 여성과 남성이 자유롭게 택할 수 있고 출산도 좀 더 자유로운 편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발끈하시는 분들이 있으실 것 같은데요. 근본도 없는 이야기라고. 하지만 잘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지점은 그 어려운 제도를 유지하기 위해 힘든 관계성을 유지하는데 우리 사회가 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가졌는지, 또 그러면서 그 ‘정상’이라고 생각되지 않는 것들을 얼마나 배제해왔는지를 성찰해야 할 때입니다.

❏ 진정한 사랑과 우정은 독립적이고 동등한 개인들 사이에서 가능하며 이들의 연합과 결합을 우리 사회는 이제 다양하게 인정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