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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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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전남CBS, 라디오 칼럼] 고통 속에 담긴 비밀_안경주 원장 칼럼
작성자 전남여성가족재단 크리머스 등록일 2021-04-30


2021- 4- 28(수) 전남CBS, <시사의 창, 임종훈입니다> '오늘의 세상읽기'

전남여성가족재단 안경주 원장 칼럼

FM 102.1MHz(순천 89.5MHz), 모바일-CBS레인보우 애플리케이션 이용(전남CBS 설정)


[고통 속에 담긴 비밀]


❏ 74세의 배우 윤여정이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았습니다. 한국배우로는 처음 있는 일이며, 아시아 배우로는 1957년에 수상한 일본인 배우 우메키 미요시에 이어 두 번째 있는 일이라고 합니다. 배우 윤여정은 수상소감에서 남녀 성별이나 백인, 황인, 흑인 등의 인종이나 동성애니 이성애니 등으로 나누고 차별하지 말고 이 모든 것들이 어우러지는 무지개처럼 살아가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당당한 배우, 그러면서도 인간의 진솔한 삶 앞에서 겸손했던 그리고 진중하게 함께할 줄 알았던 70여 년의 인생이 만들어내는 연기가 세계인이 기억하고 싶은 일이 된 것입니다. 윤여정이 살아온 70여 년의 여정이 늘 쉽지만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구요. 때로는 힘든 산을 넘어야 하고 아픔을 삼켜야 했을 순간들도 많았을 테지요. 중요한 것은 그러한 순간들을 견디고 넘어왔다는 것이죠. 그리고 그 안에서 삶에 대해 갖는 당당한 자신감과 자신의 색깔, 그리고 무엇보다도 겸손을 배웠을 거라는 것입니다.


❏ 코로나로 힘든 시기, 많은 이들이 좌절과 고통을 느끼며 일어설 수 없을 것 같은 무기력에 잠겨 있거나 이제 다 끝난 것 같은 실망감에 자신을 놓아두었던 경험들이 한두 번은 있었을 것 같습니다. 인류의 역사를 바꾼 운명의 순간들을 생생하게 포착하여 전해준 슈테판 츠바이크의 『광기와 우연의 역사』에서 기술된 메시아를 작곡한 헨델의 이야기가 최근 제 마음에 있어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 쉰둘이 된 헨델, 뇌졸중으로 쓰러져 오른쪽이 마비되었습니다.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발작으로 잃어버린 뇌 기능과 마비되어버린 몸을 일으켜 세울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는 넉 달을 힘없이 살았습니다. 피아노 건반을 두드릴 힘조차 없었습니다. 입술과 전신이 일그러져 소리를 낼 수도 장단을 맞출 수도 없이 아무런 힘이 없는 채로 보이지 않는 무덤 속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러나 헨델의 의지력은 삶을 위해, 삶에 대한 가장 거친 열망, 치유를 위해 매일 아홉 시간씩 온천수에 몸을 담가 죽음에 맞섰습니다. 그리고는 의학상의 기적으로 연주를 다시 하고 음악을 만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사울>, <이집트의 이스라엘>, <알레그로, 펜시에로소와 모데라토> 같은 오라토리오들을 써 내려갔습니다. 그러나 시절은 그의 편이 되어주질 않았습니다. 여왕의 죽음으로 연주회는 중단되었고, 곧이어 영국과 에스파냐의 전쟁이 시작되어 극장은 텅 비어갔고, 헨델의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만 갔지요. 이 강한 남자 헨델은 지쳐서 자신의 그림자와 세상의 냉혹함 그리고 공허함 속에서 이렇게 꺼져가기보다는 차라리 그때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분노 속에서 그는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가 했던 말을 몇 번이나 뇌까렸습니다. “주여, 나의 주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 이미 절망한 헨델, 스스로에게 넌더리가 난 사람, 완전한 절망에 갇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헨델에게, 어느 날 <사울>과 <이집트의 이스라엘>의 가사를 써주었던 시인 찰스 제넨스의 편지가 당도했습니다. 첫 장에 ‘메시아’라고 쓰인 표제 아래, ‘위안받으라! comfort ye라는 가사가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그분이 너를 정화하시리! and he shall purify. ‘우리가 아는 헨델의 메시아는 완전한 절망 가운데 지푸라기조차 잡을 힘이 없던 헨델의 심장과 영혼이 완전히 깨어지는 가운데 탄생합니다. 환희의 시와 말들이 벌써 음성으로 바뀌어 그의 내면을 가득 채웁니다. 그의 내면에 퍼져 흐르는 불길처럼 그를 괴롭히며 흘러나오려고, 밖으로 나오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음악은 그에게서 빠져나와 위로, 다시 하늘로 돌아가려 하자 헨델은 서둘러 펜을 움켜쥐고 음표들을 그렸습니다.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이 장면을 슈테판 츠바이크는 이렇게 묘사합니다……. 세찬 바람에 밀리는 범선처럼 그는 계속 몰리듯 적어나갔다. 밤의 침묵속에 축축한 어둠이 대도시를 감싸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내면에는 빛이 흘렀다. 들리지는 않았지만, 그의 방은 우주의 음악으로 가득 차서 울리고 있었다’라고 말입니다. 이렇게 헨델은 3주동안 시간을 잊어버리고 낮과 밤을 구분하지 못한 채, 오직 음악의 리듬과 박자만이 존재하는 공간에서 살았습니다. 그렇게 헨델의 ‘메시야’는 탄생한 것입니다. 천상과의 대화 그리고 천상의 소리를 영혼으로 담은 메시야는 그 이후 인류에게 큰 감동을 선사하고 있습니다.


❏ 헨델은 눈이 멀도록 작업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무적의 용사처럼 지치지 않고 지상에서의 승리가 위대할수록 신 앞에서는 더욱 겸손하게 일했다고 저자는 쓰고 있습니다. 우리는 저마다 보이지 않는 고통과 싸우고 있을 때가 있습니다. 그 고통은 어떤 면에서 가장된 축복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윤여정에게서 그리고 헨델에게서 봅니다. 고통 속에 놓여 본 사람만이 기쁨을 압니다. 시험을 당해 본 자만이 은총의 최종적인 선의를 짐작하게 됩니다. 우리 인생은 어쩌면 곳곳에 숨겨져 있는 보물들을 찾아가는 과정이며 그 보물들은 고통이라는 껍데기 안에 담겨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